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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격투기/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이라는 연금을 타먹는 남자 [下]

by 정칼럼 2021.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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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미노루 vs. 엘 솔라, 스즈키의 격투 인생이 끝나는 시점

딥(DEEP)이라는 단체가 있다. 사에키 시게루(佐伯繁)라는 괴짜 사업가가 만든 종합격투기 단체다. 그는 어릴 적 파친코(빠칭코), 프로레슬링 등 서브컬처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나고야에서 스튜디오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그리고 그는 어릴 적의 꿈을 현실화시킨다. 바로 '이종 격투기 단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동네북 신세가 된 '왕년'의 카리스마 스즈키, 딥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시 딥은 '격투기 장난감 상자'라고 불릴 정도로 이색적인 단체였다. 격투기 심판의 시합을 주선하고, 복면 프로레슬러의 종합격투기 경기를 만드는 등 오만가지 장난을 다쳤다. 역시 성공한 덕후가 되어야 한다

 

사에키 대표에게 스즈키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스즈키에겐 역사와 서사가 있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이라는 일본 최대의 프로레슬링 단체에서 데뷔, UWF라는 종합격투기의 태동이 되는 단체에서 활동했다. 이후엔 유에프씨(UFC) 보다 빠르게 종합격투기 단체 판크라스를 조직, 격투가로서의 변신에 성공했다.

 

그 사이에는 스승인 후지와라와의 의절, 선배인 마에다 아키라와의 감정 싸움 등 업계 거물과의 스토리도 있었다. 더불어 최근의 전적이 좋지 않았으므로 몸값도 적당했다. 저비용 고효율의 스타였다. 사에키 대표는 역사에 남을 시합을 기획한다.

 

난장판이 된 사각의 링, 스즈키 격투 인생 흑역사

판크라스는 '완전실력주의(完全実力主義)'를 표방한 단체였다. 선배에 대한 하극상과 스승에 대한 쿠데타로 태어난 단체였다. 스즈키는 이곳의 부모다. 복면 레슬러 따위, 그야말로 떡밥 매치였다. 사실, 잘 나가던 시절의 스즈키라면 오퍼 자체를 거부했을 거다. '가오가 있지, 어딜...'

 

상대는 엘 솔라(El Solar), 멕시코에서 태어난 루차 리브레(Lucha libre) 프로레슬러다. 남미에서 복면을 쓰고 하늘을 날아다니다 일본에 넘어와 초대 타이거마스크와 경기했던 양반이다. 1956년에 태어났으니까, 스즈키와의 경기가 주선됐던 2002년 당시에 이미 47살이었다.

 

결과는 스즈키의 반칙승. 곧휴 두 방을 연달아 얻어 맞은 스즈키는 경기를 포기했다. 엘 솔라는 자신이 승리한 것 마냥 환호했다. 순간 판크라스의 미노와 이쿠히사(美濃輪育久), 이토 타카후미(伊藤崇文) 등이 뛰어 올라왔다. 링은 수라장이 됐다. 관객은 스즈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스즈키 미노루의 시대는 확실히 끝나있었다

포인트는 하나였다. 스즈키는 이 노병을 압도하지 못했다. 그것도 종합격투기 링 위에서. 엘 솔라는 47살이나 먹었고, 누가 봐도 자신이 불리한 룰 위에서 젊은 스즈키를 맞이하게 됐으나, 자존심은 지켰다. 루차 리브레 시절의 망토를 두르고 등장했고 복면을 그대로 쓰고 경기에 임했다.

 

곧휴를 찼네, 마네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종격투기라 불리던 그 시절, 프로레슬러 엘 솔라는 '시멘트(セメント, 프로레슬링 경기 중 상대를 고의로 가격하는 행위)'의 개념으로 링 위에 올랐다. 프로레슬러 출신 스즈키는 이를 당해내지 못했다. 당시 관객의 감각이 이러했다.

 

사에키 대표는 그에게 타무라 키요시(田村潔司)와의 양국 국기관(両国国技館) 대회 메인이벤트를 제안한다. 거액의 오퍼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스즈키는 거절했다. 좁아진 판크라스 무대에서의 입지, 엘 솔라와의 졸전까지, 스즈키는 고독의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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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미노루 vs. 쥬신 썬더 라이거

그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왔다. 판크라스가 신일본 프로레슬링과의 항쟁을 시작한 거다. 2000년대가 열리면서 판크라스는 개방을 시작했다. 판크라스 소속 프로레슬러들이 타 단체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영역은 '격투기'라면 사족을 못 쓰던 안토니오 이노키(アントニオ猪木)의 신일본 프로레슬링까지 닿았다.

 

국내에선 곤도 유키 대 조쉬 바넷(Josh Barnett)의 대항전 경기가 유명한데, 사실 일본에서 화제가 된 시합은 따로 있었다. 바로 스즈키 미노루 대 쥬신 썬더 라이거(獣神サンダー・ライガー)였다. 일본 종합격투기는 역사에 민감하다. 역사는 스토리를 만드는 좋은 소재다. 두 사람의 경기는 이런 점을 충족했다.

 

몰락한 스즈키를 돕기 위한 옛 전우들의 노력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제로원의 하시모토 신야(橋本真也)는 스즈키에게 프로레슬링 복귀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사사키 켄스케(佐々木健介)는 판크라스에 출전해 스즈키와 대결할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당시 하시모토, 켄스케의 위치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우정이 아니고서야...

 

2002년 11월, 요코하마 문화 체육관의 기회

스즈키 미노루를 위한 '친구' 야마다 케이이치(山田恵一)의 선물이었다. 서로가 어렸던 1980년대, 스즈키는 후나키, 야마다와 곧잘 어울려 지냈다. 그들은 영 라이온의 군기 반장 노릇도 했다. 야마다는 라이거가 돼 주니어 헤비급의 전설이 됐고, 후나키는 판크라스의 영원한 상징으로 산화했다. 스즈키 혼자 현시창이었다.

 

관객들은 패배한 라이거의 용기에 박수를 쳤다. 스즈키는 여기서 프로레슬링이 가진 힘을 느꼈다고 전한다. 대충 말하자면 "승패의 결과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관객의 마음을 누가 움직였느냐, 이게 바로 프로레슬링의 힘이구나" 같은 감상으로 프로레슬링 복귀를 결정했다는 만화 같은 스토리인데.

 

사실 그런 건 아니고. 애초부터 그의 프로레슬링 복귀는 예정돼 있었다에 내 손목을 건다. 바로 전에 있었던 엘 솔라 전, GCM 그래플링 매치 등을 보면 스즈키는 매우 냉정하고 차분한 상태를 유지한다. 머리 스타일도 평범하게 커팅한 검은 머리 혹은 염색한 노란 머리(속칭 스즈키 외모 전성기)였다.

 

쥬신과의 경기를 보면 난데없이 삭발을 하고 나왔다. 살도 기름지게 찌웠다. 판크라스에서 추구하던 하이브리드 바디는 개나 줬다. 스즈키의 판크라스 말년은 자신감 상실로 인한 엄근진 그 자체인데 라이거 전부터 지금의 스즈키 캐릭터가 됐다. 파운딩 칠 때 봐라, "우헤헥, 키햐학" 거린다.

 

종합격투기에서 더 이상 안 될 거 같으니, 쥬신 라이거라는 따뜻한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고 드라마처럼 프로레슬링에 복귀할 계획이었던 거다.

 

우리가 보고 있는 '프로레슬러' 스즈키의 이미지

자신이 부정했던 야오초(八百長, 승부조작)의 세계, 프로레슬링. 선배들의 명을 거부하고, 항쟁을 통해 이끌어낸 20대 젊은 무리들의 판크라스. 스즈키는 정확히 10년 뒤, 자신이 했던 과거의 역사를 후회했다. 사야마 사토루, 마에다 아키라, 다카다 노부히코(髙田延彦) 등 선배와 화해하고 스승이던 후지와라, 이노키를 예방했다.

 

뭐, 요약하자면, 영원할 거 같은 젊음과 전성기가 끝나고, 이번엔 또 다른 젊은 무리들이 자신을 말밥 취급하니까, 이제야 정신 차리고 자신의 고향에 돌아왔다 정도겠다만. '신념(信念, しんねん)'을 무기로 종합하겠다고 하극상 벌인 인간 중 가장 먼저 프로레슬링 복귀해서 돈 벌고 있던 모습을 보자면,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물론 프로레슬링 복귀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무대에 복귀하고 도쿄돔 무대도 금방 밟고, 2006년에는 연간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MVP를 수상했다. 프로레슬링 노아(NOAH), 전일본 프로레슬링(全日本プロレス)에서는 챔피언도 했다. 쩔었다, 스즈키.

 

2006년 연간 프로레슬링 대상 MVP 수상, 판크라스 후배들과 함께

그래도 이 사람 참 좋은 사람 같다. 판크라스 말년에 도와주려고 했던 옛 프로레슬링 동료들을 떠올려 보면 스즈키가 어떤 타입의 인간인지 대략 감이 온다. 간지 하나도 인정한다. 프로레슬링 복귀 후에도 풍비박산 판크라스를 끝까지 떠나지 않고 챙겼다. 남자로서 멋지다.

 

키타오카 사토루(北岡悟)가 센고쿠(SENGOKU) 토너먼트 우승했을 때 가장 먼저 연락했던 사람이 스즈키라고 한다. 오이시 코지(大石幸史)도 원 챔피언쉽(ONE Championship) 챔피언에 올랐을 때 스즈키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참 의리 있다.

 

글의 말미, 갑작스러운 칭찬이 당황스럽다고?

 

이교덕 기자 & 스즈키 미노루 & 정윤하 칼럼니스트

보니까,

좋은 사람은 확실히 맞더라고.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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