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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격투기/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이라는 연금을 타먹는 남자 [上]

by 정칼럼 202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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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던 간지, 스즈키의 '그때 그 리즈 시절'

일본 프로레슬링 판 슈퍼스타, '세계에서 가장 성격 더러운 남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스즈키 미노루(鈴木みのる). 그의 종합격투기 말년 커리어에 대해 좀 알아보자.

 

그는 프오타(プオタ, 프로레슬링 오타쿠)라 불리는 프로레슬링 신자(信者, しんじゃ)에게 인기 만점인 힐(Heel, 악역 캐릭터)이다. 누구보다 재밌고 악랄하게 링을 지배하고, 누구보다 속 시원하고 장렬하게 패배한다. 스즈키 미노루라는 레슬러, 이 남자가 가진 능력이란 말로 다 하기 어렵다.

 

프로레슬링 전문지 공(GONG)은 "누가 프로레슬링을 재밌게 만드는가(Who Makes Pro-Wrestling Fun)?"라는 타이틀로 스즈키를 전면에 내세웠다. 만화가 이노우에 타케히코(井上雄彦)는 자신의 만화 '리얼(Real)' 13권에서 그를 모델로 한 '스콜피온 시라토리(スコーピオン白鳥)'를 주연으로 다뤘다. 오졌다, 스즈키.

 

바람(風)이 아닌 '달이 되어라(月になれ)'

스즈키의 커리어엔 빈틈이 있다. 그는 1988년 신일본 프로레슬링(新日本プロレス)에서 데뷔했다. 이후 후나키 마사카츠(船木誠勝)를 따라 신생 UWF(新生UWF)로 이적한다. 1991년, 마에다 아키라(前田日明)의 충격적인 해산 선언에 따라 신생 UWF는 삼분, 스즈키는 후지와라 요시아키(藤原喜明)를 따라 '신 UWF 후지와라 구미(新UWF藤原組)'로 간다.

 

스즈키는 여기서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킨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도 그랬고, 후지와라 구미에서도 그랬다. 성격은 모난 곳 투성이었고, 싸가지가 바가지인 인성도 문제였다. 스승도 감당이 어려웠다. 후지와라가 스즈키의 후지와라 구미 퇴단을 결정하며 남긴 한 마디는 이러했다. "이젠 틀렸다(もうだめだ)".

 

여기서 국내 격투기 팬이나 프로레슬링 팬이 궁금해하는 부분이 나온다. 스즈키의 후지와라 구미 퇴단이 1992년, 신일본 프로레슬링 복귀가 2003년. 중간에 비어있는 11년 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 뭐, 알만한 사람들은 대충 안다. 그가 종합격투기 단체 판크라스(PANCRASE)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유에프씨(UFC)보다 오래된 역사, 올해로 28주년을 맞이한 종합격투기 단체

판크라스는 1993년 개막한 종합격투기 단체다. 역사가 유에프씨(UFC) 보다 길다. 켄 샴락(Ken Shamrock), 바스 루텐(Bas Rutten) 등 판크라시스트 출신으로 UFC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이만 두 명이다. 한때는 조제 알도(Jose Aldo), 카를로스 콘딧(Carlos Condit), 네이트 마쿼트(Nate Marquardt) 같은 스타도 판크라스 링 위에 있었다.

 

스즈키는 판크라스의 시작이다. 그는 전설로 남아 있는 판크라스의 첫 대회, 1993년 9월 21일에 열렸던 '예스, 위 아 하이브리드 레슬러(Yes, We Are Hybrid Wrestlers)'의 1경기를 맡았다. 1995년에는 챔피언을 뜻하는 '킹 오브 판크라시스트'에도 올랐다. 판크라스에서만 50전 이상의 종합격투기 경기를 뛰었다.

 

그럼에도 국내 팬들은 그의 종합격투기 커리어를 잘 모른다. 애매모호한 얘기들만 있다. "숱한 강호들을 이겼다더라", "정말 강했다더라" 대충 이런 느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에 '종합격투기'라는 스포츠가 들어온 게 길게 봐줘야 2002년 이후니까.

 

이때는 이미 스즈키라는 양반의 종합격투기 커리어가 나락까지 떨어졌을 때다. 그러니까 종합격투기 팬들 사이에 '스즈키 미노루'라는 이름이 나올 일이 없었다. 논외의 선수였단 거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그래. 조쉬 버크만(Josh Burkman, 최근 MMA 전적 10전 1승 9패, 이젠 어디서 뭐하는지도 모름) 정도 생각하면 될 거다.

 

이러니 종합격투기 팬들에겐 그냥 무관심의 퇴물이요, 잘 쳐줘야 '판크라스를 만들었다는 사람?' 정도였다. 프로레슬링 팬들에게도 종합격투기 시절 스즈키는 관심 밖의 일이요, 대충 '아, 이번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복귀한다던 걔?' 정도의 취급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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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웅(両雄, りょうゆう)'이라 불렸던 짧았던 영광

시작은 좋았다. 후나키 마사카츠라는 카리스마 넘치던 인물과 붙어 다니면서 신일본 프로레슬링, 신생 UWF, 후지와라 구미에 이르기까지 나이에 비해 적당히 스타 대접받으며 프로레슬링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 1993년, 판크라스라는 역사적인 단체의 설립 멤버가 되면서 이른바 '양웅'이 된다.

 

후나키와 판크라스 내부 세력을 양분(후나키 마사카츠=판크라스 도쿄 도장, 스즈키 미노루=판크라스 요코하마 도장)하면서 챔피언 벨트도 허리에 감아봤다. 켄 샴락, 바스 루텐, 세미 슐트(Semmy Schilt), 프랭크 샴락(Frank Shamrock) 등 지금은 '레전설' 취급받는 외국인 종합격투가와 자웅을 겨뤘다. 이때까지는 정말 쓸 만했다, 스즈키.

 

문제는 1996년 정도부터 일어났다. 원래는 '하이브리드 레슬링(Hybrid Wrestling)'이라고 해서 프로레슬링의 범주 안에 있는 무언가를 시작한 줄 알았는데, 이게 알고 보니 종합격투기라는 신(新) 스포츠의 스타트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판크라스의 개막 이후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선 그레이시 일족(Gracie Family)에 의해 유에프씨가 열렸다. 일본 도쿄에선 사야마 사토루(佐山聡)가 발리투도 제팬(Vale-Tudo Japan)이라는 대회를 열었다. 업계 수준이 순식간에 올라갔다. 예전처럼 '캐치 레슬링(Catch Wrestling)'이라는 이름 하나 걸고 휙휙 돌면서 서브미션이나 잡던 시절이 끝났단 소리다.

 

스즈키 미노루 vs. 키쿠타 사나에, 판크라스의 향후 판도를 바꾼 매치업

이러하니 스즈키가 몹시 당황한다. 판크라스에 입문한 지 반년밖에 안 된 곤도 유키(近藤有己)한테 줘 털린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리자 스즈키는 특유의 미소를 띠며 곤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만, 뭔가 "많이 컸구나, 짜식" 같은 느낌보다 "이렇게 줘 털리고 내려가면 내 가오가 떨어지니까..."의 느낌이 강했다.

 

이때부터 처절한, 답 없는 판크라스 커리어가 이어진다. 1990년대 후반으로 가면 불쌍한 수준까지 내려간다. 후케 타카쿠(冨宅飛駈) 같은 쪼렙 창단 멤버에게도 패배하는 한편, 이제는 무슨 선후배고 뭐고, 시부야 오사미(渋谷修身) 같은 새까만 송사리한테도 빌빌 거린다. 이러다 찾아온 게 키쿠타 사나에(菊田早苗)와의 경기였다.

 

스즈키는 자신의 몰락을 예견하고 있었다. 1996년 말부터는 부상을 이유로 판크라스 경기에 거의 나오지 않는 실정이었다. 이러는 가운데 종합격투기의 수준은 더더욱 올라가고 있었으니, 그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이때 그가 복귀전으로 결정한 상대가 키쿠타였다.

 

자신의 약점이 타격이라고 멋대로 판단한 스즈키는 마찬가지로 타격보다는 서브미션에 장점이 있던 키쿠타를 먹잇감으로 골랐다. 키쿠타가 훗날 동양인 최초로 아부다비 컴뱃 레슬링(ADCC)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흠좀무한 선택이었다.

 

1999년 12월, 요코하마 문화 체육관의 비극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왔다던 스즈키는 2분 39초 만에 패배했다. 링 위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쿨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떠나는 모습이었으나 라커룸의 상황은 달랐다. 스즈키는 오열했고, 후배들은 침묵했다. 키쿠타와 그를 추종하는 외부 세력들은 환호하며 파티를 벌였다. 이 경기는 훗날 '이즘 대 그라바카'라는 스토리의 기원이 됐다.

 

해설을 맡고 있던 맹우(盟友, めいゆう) 후나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훗날 후나키는 "이제 양웅이 아니다. 스즈키를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는다(もう両雄じゃない、鈴木のことはライバルとは思っていない)"는 말을 던진다. 스즈키는 점점 고립돼갔다.

 

판크라스에서의 스즈키 시대는 바람처럼 짧게 스쳐갔다

스즈키는 영양 만점의 먹잇감이었다. 그는 유명인이었다. 후나키와 함께 판크라스를 설립한 인물이었다. 엔에이치케이(NHK)에서 만든 프로레슬링 특집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했다. 스카이퍼펙트(SKY Perfect!)의 광고 모델이기도 했다. 정작 실력은 호구였다. 이보다 좋은 상대가 없었다.

 

링스(RINGS)의 사카타 와타루(坂田亘)가 스즈키의 심부름꾼(付き人) 쿠보타 코세이(窪田幸生)를 KO로 잡았다. 사카타는 승리 직후 스즈키와의 대결을 요구했다. 슛복싱 출신 프로레슬러 무라하마 타케히로(村浜武洋)도 그를 원했다. 그라바카의 고노 아키히로(郷野聡寛)도 허구한 날 갈궈댔다. 개나 소나 스즈키戰을 바라는 상황이 됐다.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어차피 쳐발릴 걸 아니까...

 

[下]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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