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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연구소/잡학사전

사형! 노무라 사토루, 실록 쿠도카이 [上]

by 정칼럼 2021.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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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엄을 뽐내는 쿠도카이의 5대 총재, 노무라 사토루

어둠을 주름잡던 남자의 말로는 사형이다. 지난 8월 24일, 일본 산케이 신문(産経新聞)은 한 사내의 사형 판결을 보도했다. 한때는 일본 키타큐슈(北九州,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에 있는 주요시) 지역 최대 조직의 회장이었고, 현재는 총재로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노무라 사토루(野村悟)의 최후였다.

 

"너 평생 후회할 줄 알아(お前, 生涯後悔するぞ)!" 판사를 향해 소리치던 모습은 모두를 경악에 몰아넣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모양이다. 후쿠오카현 경찰은 "사법 관계자에게 상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라며 경호 강화를 약속했다.

 

총재는 사형, 회장인 다노우에 후미오(田上不美夫)도 무기 징역을 받았다. 야쿠자(ヤクザ) 두목급에 대한 판결 중 사형은 역대 최초다. 이 미친 것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일본 전역의 스포트라이트 속에 법정 최고형을 받은 걸까.

 

쿠도카이(工藤會), 일본 키타큐슈를 장악하고 열도 전역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이 지독한 무투파(武闘派)의 정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리즈시절' 1988년 야마구치구미(山口組) 간부 회의
'현시창' 2021년 영화 '야쿠자와 가족(ヤクザと家族)' 中

임협(任侠)의 낭만 따위 없다. 열도로 따지면 헤이세이(平成) 3년, 그러니까 1991년, 일본은 '폭력단 대책법(暴力団対策法, 이하 폭대법)'을 구체적으로 법령화했다. 여기에는 입막음 돈, 자릿세, 기부금, 찬조금, 부당한 강매 등 이른바 '삥 뜯는 행위'들을 금지하는 내용이 명확히 담겨 있었다.

 

무서운 내용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말단 조직원이 타인의 신체, 생명 등에 상해를 가하거나 재산을 침범하면 '조직의 윗선'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한마디로 "네가 책임져라"하고 꼬리 자르는 행위가 어려워진 거다.

 

야쿠자 조직은 막대한 돈으로 법조인을 긁어 모았다. 빌어먹을 폭대법을 어떻게 하면 비껴갈 수 있느냐, 이제는 법에 대한 공부의 시대가 열렸다. 주먹으로 다스리던 시대의 종말, 이 흐름은 어쩔 수 없었다.

 

2010년대가 오면 폭력단 대책법의 업그레이드 판인 '폭력단 배제조례(暴力団排除条例)’라는 게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야쿠자는 은행 거래도 할 수 없고, 각종 보험 혜택에서도 제외됐다. 심지어 핸드폰 개설도 어려워졌다.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요즘에 야쿠자를 누가 합니까?" 맞는 말이다. 차라리 한구레(半ぐれ)로 남아 막 살면서 양아치 짓이나 하는 게 낫다. 야키니쿠(焼肉) 가게 서빙만 해도 시급이 얼마냐. 정상적으로 뇌가 굴러가는 청년이라면, 야쿠자 환상 따윈 없어진 지 오래다.

 

총재를 향한 쿠도카이 중간 간부들의 폴더 인사
영화 '사쿠라 술잔의 인의' 따위를 지금도 찾는가?

쿠도카이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이들은 벤자민 버튼으로 태어났다.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도 몸을 사리고 살길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데, 이들은 여전히 극도(極道)와 협객(俠客)을 찾았다.

 

중2병이 심각한 수준이다. 삼합회(三合会)와 갈등을 벌이다가 후쿠오카에 있던 중국 영사관을 샷건과 덤프트럭으로 밀어버린 사건은 전설의 레전드로 남아있다. 심지어 이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우리가 아는 전 내각총리대신 맞다)의 돈까지 뜯어내려고 했었다. 미친놈들이 확실하다.

 

여차하면 바로 주먹과 총알부터 날아간다. 자기들 맘에 안 들면 민간인이건 공무원이건 상관없다. 보호비를 안 준다는 이유로 대중 사우나에 쥐약을 살포(...)하는가 하면, 후쿠오카현 폭력단 담당 경부 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방화를 저지르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폭대법과 폭력단 배제 조례의 실시 이후, 그러니까 야쿠자가 머리를 맞대고 생존의 길을 찾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두목급 최초의 사형 선고. 쿠도카이가 아름다운 첨단의 21세기에 벌인 협객 활동엔 무엇이 있었을까?

 

아베의 쿠도카이 화염병 스캔들, 곤혹 오지게 치뤘다

2000년: 아베 신조 중의원 화염병 투척 사건

훗날 일본국 총리로서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아베 전 총리도 쿠도카이에 혀를 내두른다. 그는 중의원 시절, 쿠도카이에게 혼쭐이 났다. 깡패들 잠깐 이용해 먹고 버릴 생각이던 아베 측은 쿠도카이에게 상대 후보 비방 유인물을 살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주기로 했던 돈을 떼먹었다(...)

 

2006년 6월 한달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아베에게 화염병 테러가 가해졌다. 6월 14일 새벽 4시 아베 신조 사무소에서 조금 떨어진 5층 건물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아베가 제42회 중의원 총선거에 출마 신고를 한 다음날이었다.

 

6월 17일에는 아베의 집 창고 및 차고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승용차 3대가 불탔다. 27일, 28일에는 아베 사무소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아베가 재선 중의원이 된 지 며칠밖에 안 지냈을 무렵이었다.

 

8월 14일에는 아베 후원회 사무소에 화염병이 날아왔고, 같은날 새벽 4시 20분경에는 아베의 집 창고 및 차고에 다시 한번 화염병이 날아왔다. 6월 테러 이후 새로 산 승용차를 재차 불태워버렸다(...).

 

후쿠오카현 경찰과 야마구치현 경찰의 합동 수사 본부가 설치됐다. 이후 총 6명의 인물이 구속됐다. 쿠도카이의 타카노구미(高野組) 조장과 부조장이 포함돼있었다. 이들은 각각 징역 20년과 12년을 선고받았다. 조직원도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 사건은 쿠도카이의 성질머리가 어떤지 단적으로 보여준 미친 짓으로 남아있다.

 

수류탄 테러를 당한 클럽 보루도의 현장

2003년: 클럽 보루도 수류탄 습격 사건

2003년 8월 18일,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발생했다. 쿠도카이 조직원 'K'가 후쿠오카에 있던 클럽 보루도(ぼおるど)에 수류탄을 던졌다. 일하던 여성 12명이 사상했다. 이 사건은 쿠도카이의 잔혹성이 일본 전역으로 퍼진 계기가 됐다.

 

보통 수류탄이라고 하면 ‘파편 수류탄’이 대명사다. 우리가 흔히 보는 파인애플처럼 생긴 그거다. 통념과는 다르게 ‘파편 수류탄’은 주로 적이 돌격해 올 때 던져서 적을 쫓아내는 용도로 쓰인다. 클럽 습격 사건에 쓰인 수류탄은 TNT 기반의 ‘공격용 수류탄’이었다.

 

쿠도카이계 다나카구미(田中組) 산하 조직인 나카지마구미(中島組)의 조직원이던 ‘K’는 수류탄 투척 이후 도주했으나 클럽 직원들에게 붙잡혔다. ‘K’는 클럽 습격 당시 바이크 헬멧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 붙잡지 않았다면, 쿠도카이의 범행 임을 알 수도 없었다.

 

‘K’는 직원들에게 붙잡히는 과정에서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 2명이 심하게 부상 당했다. 경찰과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이상하게도 ‘K’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경찰은 급히 그를 응급실로 보냈으나 결국 사망했다.

 

‘혀를 깨물어 자살했다’는 속설이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혀는 멀쩡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가 왜 클럽 보루도를 습격했는지, 누구의 명령으로 수류탄 테러를 감행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개기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쿠도카이의 목적은 달성됐다. 해당 클럽은 ‘폭력단 추방 운동’의 협력자가 운영하고 있었다. 쿠도카이의 테러에 한껏 쫄아버린 클럽은 폐업 수순을 밟았다. 후쿠오카현 경찰이 쿠도카이 조직원 100여 명을 구속했으나, 이것이 주요한 효과를 발휘하진 못했다.

 

열받은 일본 경찰에 털리는 쿠도카이 총본부

2004년: 쿠도카이 권총 테러 사건

쿠도카이의 범행은 보다 노골적으로 변했다(폭대법 따위 개나 줘버린다). 2004년 한 해, 쿠도카이 소행으로 밝혀진 총격 사건만 7건이다. 이중에는 정치권 인사도 포함돼 있었다.

 

2004년 1월 25일, 새벽 2시경 키타큐슈시 고쿠라미나미구(小倉南区)에 있는 키타큐슈 시의회 의장 집에 권총 3발이 발사됐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한 발이 가족 머리맡에 있던 벽에 맞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4월 18일 새벽 3시경에는 고쿠라키타구(小倉北区)에 있던 파친코(빠칭코) 마루한(マルハン) 점주의 집에 총격을 가했다. 5월 21일 새벽 3시경에는 후쿠오카 현 의원의 집에 권총 세례를 퍼부었다.

 

6월 22일에는 고쿠라미나미구 건설 회사 사무소에 총알이 날아들었다. 27일 새벽 1시에는 고쿠라키타구의 종합건설 키타큐슈 영업소에, 28일 새벽 4시에는 고쿠라키타구 의류 점포에 총알이 발사됐다. 연달아 터지는 권총 테러에 일본 열도가 충격에 휩싸였다.

 

무차별적인 실탄 발사 사건이었다. 범행의 원인과 동기가 명확하지 않아 수사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사건이 터졌다. 쿠도카이 산하에서 일하던 ‘I’ 조장이 트럭을 몰고 오픈 직전의 파친코 마루한 미야타마치(宮田町, 후쿠오카현에 있던 동네)점에 그대로 돌진(...)했다. 현장에서 ‘I’ 조장이 검거됐다.

 

‘I’ 조장의 검거를 시작으로 테러 사건의 실마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건은 쿠도카이 산하에 있던 중간 간부와 조직원들에 의해 벌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금 소개하는 사건들,

응답하라 OOOO 시대 얘기 아니다. 밀레니엄 이후의 얘기다.

 

[下]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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